천국과 지옥은 쉼과 안식의 차이이다. 단순화해서 천국은 안식이고 지옥은 안식이 없는 상태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성경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안식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주제이고 기본적 원리이다. 그렇기에 기독인은 안식에 대해 비중 있게 여기며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1.안식의 의미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 하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안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안식은 하나님이 아니라 실상은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안식을 보여주시고 열심히 일하되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에는 안식이 있었다.
그런데 안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인하여 깨어지게 된다. 인간의 타락과 저주 사건의 중심에 안식이라는 주제가 있다.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은 ‘인간에게 안식을 빼앗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는 ‘인간의 수고’로 집약된다.
여자는 수고하여서 아이를 생산하고 남자는 수고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다. 이것은 곧 에덴에서 누리던 평안과 안식의 종식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안식을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2.안식의 방법
안식을 소망하지만 안식에 쉬 들어가는 못한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3-4장에는 안식의 문제를 다루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즉 하나님의 은혜와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안식을 누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쉬는 것이다. 6일간의 모든 일을 내려놓고 휴식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예배하는 것이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질 때 육체와 영혼이 쉼을 얻고 안식을 누리게 된다. 우리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은 불신앙이기에 다시 깊은 안식으로 들어가는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하다.
말씀을 잃어버렸을 때 안식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의 안식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방법이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느끼게 하고 비둘기 같은 안식을 경험하게 된다.
3.안식의 축복
하나님은 안식으로 나아오는 자를 축복하신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참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다른 날은 복 주지시 않았는데 유독 일곱째 날 만을 복 주셨다.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주의 날을 지키는 자의 복은 대부분 예배와 연관되어 있다.
예배는 우리 발을 사슴같이 높은 곳에 올려 새로운 눈을 열어 주신다.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면 담대해 진다. 주일은 영적으로 세수하는 날이다. 예배는 밥 먹는 시간이고 재충전의 시간이다. 양껏 먹고 영혼이 유여함을 누리면 행복해진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싸우지 않고 상대를 넉넉함과 곤용으로 대한다. 내 심령이 물댄 동산 같으면 어지간한 것은 용서가 된다. 얼마든지 덮어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을 시집살이 하던 딸이 친정집에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옛날 여인들은 시집살이에 지쳐 살았으며 시집살이가 고달플수록 친정을 그리워했다. 세상 시집살이에 지친 심령들이 친정집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럴 때 고달픈 심령이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위로를 받게 된다. 할렐루야!(도원욱 목사)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켜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왔다.’(유대인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