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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타협할 수 없는 비전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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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이 힝클리라는 청년에게 저격을 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행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는데 저격사건이 발생한 날에 TV 뉴스 리포터가 그의 딸 패티 데이비스 양을 인터뷰했습니다.

‘아버지가 저격당했는데 느낌이 어떻습니까?’

‘이와 같은 폭력을 규탄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탄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총기 규제에 대한 당신 아버지의 정부가 입장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순간적으로 패티 데이비스 양이 머뭇거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함정이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아무튼 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나쁜 짓입니다.’

저는 그 뉴스를 지켜보면서 그 딸의 침착함과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총기 규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서 자신의 아버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물론 리포터의 의도였겠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드리면서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흥정하면서 삽니다. 시장에서 물건의 값을 흥정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무언가를 놓고 흥정하면서 삽니다. 자녀를 둔 부모는 공부에 대하여 자녀와 흥정합니다. 수학 숙제를 마치면 TV를 한 시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 방청소를 하면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맞으면 무엇을 사주겠다.

이런 식으로 자녀와 흥정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동료와 흥정을 합니다. 내가 당신의 프로젝트를 도와줄 테니 다음엔 내 프로젝트를 도와 달라,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내년엔 내가 승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흥정합니다. 부부간에도 흥정이 이루어집니다. 구정에는 시댁에 가니까 신정에는 친정에 가자는 식으로. 이 세상에는 흥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대가로 내주어야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 다닐 때 룸메이트와 화장실 청소를 놓고 흥정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돌아가면서 한 주는 제가 청소를 하고 그 다음 주는 친구가 청소를 하는 것으로. 남자 둘이 사는데 화장실이 얼마나 더러워지는지. 그런데 자기 차례는 기억을 잘 못하는데 남의 차례는 잘 기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토론토에 있는 어느 장로님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데 신문에 ‘흥정의 귀재, 아무개’라고 광고를 내는 것을 보았는데 흥정의 귀재가 되는 비결은 상대방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최대한으로 양보할 수 있는 한계를 알면 그쪽으로 몰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흥정의 비결인데 부모가 자녀에게 매를 들었을 때 그 자녀가 ‘아빠가 나를 때릴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 효과가 있지, ‘저건 쇼야’라고 생각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를 들었을 때는 정말로 때릴 것처럼 시늉을 해야 됩니다. 얼굴에 화를 내고 소리도 높이고 ‘아빠가 때릴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때 효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거래에 대한 사항은 상대방이 모르는 것을 전재로 합니다. 내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를 상대방이 몰라야 흥정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내 의도를 상대방에게 비밀로 합니다. 요즘의 산업스파이는 이러한 상대방의 의도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국가의 정보기관이 옛날에는 국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는데 요즘에는 산업정보를 수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이미 경험하고 잘 아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우리가 결코 흥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도 있고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남자가 자기 사업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일에 푹 빠졌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집에서도 늘 일 생각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장모님이 그를 부르셔서 ‘자네는 내 딸과 같이 살 생각이 있나?’ ‘아니, 장모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는 내 딸과 결혼한 것이 아니고 일과 결혼을 한 것 같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하니, 내 딸은 자네와 대화를 할 시간이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얼굴 한번 볼 수가 없다네. 그래서 내 딸은 이 결혼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다네.’

그때야 비로소 그 남자가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 정말 그랬겠구나. 직장에만 충실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남편의 역할을 잘한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아무리 직장에서 성공하더라도 가정생활에서 실패하면 그것이 나의 성공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서 흥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분은 직장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능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그 유능함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정에서는 또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여성이 중년의 나이에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일찍 발견해서 병을 잘 치료할 수 있었지만 이 경험을 한 다음에 이 여성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첫째는 너무 놀랐습니다. 이제까지는 죽음이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 병의 치료를 받게 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둘째는, 이전에 조급하게 생각하고 염려하던 많은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식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어떤 대학에 들어가는지가 마음에 많이 걸렸는데 병을 앓고 나니까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해 마음이 편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자녀와 같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여성도 인생에서 흥정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들을 장가보내려는 아버지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왜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습니까? 사라는 벌써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홀아비인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장가보내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그리고 늦은 나이, 백세나 되어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며느리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이 많겠습니까? 첫째, 아브라함이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종에게 이 일을 부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중매는 나이가 드신 분이 해야지 너무 젊은 사람은 부부가 서로 무엇이 맞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장 신뢰하는 종에게 이 일을 맡깁니다. 둘째는 신신당부를 했습니다.『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셋째, 조건을 제시합니다.『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그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상당히 문란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사람입니다. 때문에 아들을 장가보내는 일에 있어서도 같은 동향 사람의 딸을 며느리로 맞으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질문합니다.『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아마 이 시점에서 아브라함은 여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시집가려는 딸이 좇아 올 것으로 생각하고, 또 아브라함의 명성과 사회적인 위치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지, 혹시라도 그 딸이 따라오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이 그러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점에서 아브라함의 생각 속에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이 최고의 우선순위였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장가가는 것이 중요하지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하겠냐고 어디서든지 좋은 배필만 얻으면 되니 그렇게 하라고 말했을 것인데 그 순간 의도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삶 속에 나침반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겁니다.『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아들을 장가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장가보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찌니라』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아들을 장가보내는 일만이 아니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가 허락할 수 있는 일, 타협할 수 있는 일, 들어줄 수 있는 일, 그리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일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구별하게 만드는 명확한 기준은 하나님이 그와 그 가문에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나침반은 어디로 가져가든지 그 방향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그와 그 가문에 주신 말씀이 나침반과 같아서 아들을 결혼시키는 일이든 이주하는 일이든 이런 일, 저런 일이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Kingdom of Heaven 이라는 영화를 보면 십자군이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있는데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 군대가 예루살렘에 쳐들어옵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지경이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에 예루살렘의 대주교가 뭐라고 소리 지르느냐면 ‘Believe in Islam, repent later - 이슬람을 지금 믿고 나중에 회개하자’ 성이 함락되게 생겼으니 일단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나중에 회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순간에 급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고 평소에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밖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사람의 속에서 살인, 거짓, 음란, 이런 것들이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침반이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 순간에 그와 그의 가문이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이익이 아니고 우리에게 이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이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러한 약속을 주시는 것이고 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보태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모든 선하고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했습니다.「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으니라」이 반석위에 집을 지으면 나에게 유익입니다.

돼지삼형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첫째 형은 짚으로 집을 짓고 또 하나는 나무로 집을 짓고, 막내는 벽돌로 집을 지었습니다. 늑대가 와서 ‘후~’ 부니까 짚으로 지은 집과 나무로 지은 집은 날아갔지만 벽돌로 지은 집은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자」는 벽돌에 집을 지은 것과 같아요. 마귀가 와서 ‘후~’ 불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환란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뿐만이 아니고 내 후손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이 땅을 내 씨-후손-에게 주리라 하셨으니』아브라함은 이 시점에서 자기에게 옳은 길일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 대대손손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내 씨에게 주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삭이 설사 결혼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옛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요, 비전입니다. 제가 아브라함을 부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는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녀를 위하여, 후손을 위하여 어떤 것이 복이 될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식에게 어떤 것이 복이 되는지를 모르는 것뿐만이 아니고 내 자녀를 위해서 어떤 길이 그에게 유익한지, 그의 진로나 교육에만 유익이 되는 것만이 아니고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야 내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내 가문, 내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하기를「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그는 자신의 믿음만을 말하는 것뿐만이 아니고 자기 가문이 대대손손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나아갈 길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배필감이 있더라고 그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이 비전을 좇아오려고 하지 않으면 미련 없습니다.

어떤 교인이 사업을 하시면서 깨달은 진리 중의 하나는 버스는 떠나면 또 온다는 것입니다. 기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떠나면 또 오게 돼 있습니다. 거기에 연연해서 하나님의 주신 비전을 타협하는 것은 불신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배짱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됐습니다. 그의 계획대로 됩니다. 그렇게 되게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담대함이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김영준 목사-기쁜소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