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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이미 우리가 된 이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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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01일 00:00, 수요일

estrange최근 몇 년 사이 국제결혼과 외국인 노동자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다민족 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유입을 둘러싸고 한편에선 ‘순수 혈통’의 훼손을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귀화 외국인의 문제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십수세기 전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이방인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최근 출간된 ‘이미 우리가 된 이방인들’(동녘)은 이처럼 귀화한 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 눈길을 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때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 1626년 홀란디아 호를 타고 네덜란드를 출발한 박연은 이듬해인 1627년에 함선 우벨케르크 호로 갈아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표류, 동해안의 경주 앞바다로 밀려 들어온다. 마실 물과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모선에서 작은 배를 타고 육지로 올라온 박연 일행 3명은 그곳 주민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경주로 압송된 일행은 다시 동래부사에게 인계된다. 4, 5년간 부산에 머물던 박연 일행은 1631년 국왕 인조의 명령에 따라 서울로 올라간다.

당시는 정묘호란이 일어난 지 불과 4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로 인조는 청의 재침에 맞설 군사력 확보가 시급했다. 이에 따라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양 화포인 홍이포에 관심을 가진 인조가 박연을 서울로 불러 올린 것이다. 당시엔 네덜란드 사람을 ‘홍이(紅夷)’라고도 불렀다. 따라서 홍이포는 곧 ‘네덜란드제 대포’였던 것이다.

홍이포의 제작과 작동 원리에 대해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었던 박연은 역량을 발휘했다. 더욱이 박연은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조선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 함께 출전한 2명의 네덜란드 동료들이 전사할 정도로 충성을 보였다. 조정의 신임을 단단히 얻은 박연은 마침내 무과에 정식으로 급제하기에 이른다.

박연은 조선 여인과 결혼, 1남1녀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자손들도 훈련도감에 편입돼 군역에 복무할 정도로 완전히 조선에 동화됐던 것이다. 네덜란드인 최초로 조선에 귀화했던 박연의 본명은 얀 얀스 벨테브레. 그와 함께 조선에 정착했다가 병자호란 때 전사한 동료의 이름은 드리크 하이스베르츠와 얀 피터스 베르바스트다.

이밖에도 신라에 서역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처용은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다. 여러 문헌에서 표현하고 있는 처용의 모습은 ‘조개 같은 이와 붉은 입술’을 비롯, ‘넓은 이마, 무성한 눈썹, 우묵한 코, 큰 입, 내민 턱, 늘어진 팔’ 등 전형적인 서역인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막연한 전설상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처용의 이야기를 통해 신라시대 서역과의 교역, 문화적 번성과 쇠퇴, 성 문화를 포함한 사회상을 포괄적으로 짚어볼 수 있다.

또 고려 전기 개혁을 주도했던 한족 쌍기는 고려의 개방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방인이다. 고려 광종과 쌍기의 만남은 강렬하게 지속됐으며, 그 결과 “쌍기가 등용된 이래 글 쓰는 선비를 매우 중하게 여기고 은혜와 예의를 과하게 베풀었다”(고려사 권93, 열전 최승로)는 기록도 나온다. 고려가 주체성을 일부 상실했던 원의 간섭기에 몽골인 훌라타이로 와서 고려인으로 살다간 인후를 통해선 대륙의 혼란 속에서 고려로 귀화한 이방인들의 정착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여말선초 여진족을 이끌고 귀화한 이지란은 조선 건국의 대표적 공신. 여진족은 귀화보다는 내조의 형태로 존재했지만, 이지란을 비롯한 일부 여진족은 조선의 다양한 귀화정책으로 인해 조선인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이처럼 책은, 단일 민족과 순혈주의의 신화에 가려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속의 이방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들이 남긴 발자취를 통해 한민족사 안에도 민족과 혈연, 문화의 다양성이 풍부하게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앞으로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들이 물밀듯 밀려올 것이다. 현재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수가 약 100만명이라고 하지만 수년내에 200만, 3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특히 이들 중 결혼을 통해 한국인이 된 사람들도 상당수가 되며, 앞으로 이들의 자녀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사회 각분야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얼마전 '조승희 사건' 을 보면서 미국사회가 이 문제를 접근하는 철학과 방법을 유심히 모니터링해 보았다. 그런데, 조승희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지금 한국에 일어난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했고, 접근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마 끝없는 분노와 질타 뿐일 것일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미국 사회는 그래도 기독교 사상과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인지 용서와 사회적 공동책임, 범죄자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도래하게 될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기초하고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이다. 다민족과 다문화를 포괄하고, 용서와 화해와 화평, 그리고 나눔과 섬김을 추구하는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 밖에 없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겠지만, 지금이라도 교회, 특히 기독교 문필가들, 지도자들이 주도하여 기독교 세계관을 재정립하고 우선 교인들에게 보급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여론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족은 물론 우리 기독교는 단일민족이라는 편협주의에 갇혀 세계로 뻗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수많은 사회문제로 퇴보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살펴보고 단일민족이라는 문화적 편협주의와 교만에서 벗어나 열방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공: http://know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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